신사임당 친정집이 강릉 갑부였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익명 댓글 3건 조회 217회 작성일 25-12-30 23:55본문
그 옛날 부자들은 거의 다 땅(=논과 밭) 부자
신사임당 친정집 겁나 부자
신사임당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전.답. 유산을
신사임당 형제 자매들과 균등하게 분배 받았음
그후 세월이 지나서
친정서 물려받은 전답(=땅) 재산과 남편쪽 시댁 유산인 서울쪽 재산을
신사임당도 아들 딸 자녀들(막내 이율곡 포함) 6명에게
거의 비슷하게 균등 분배해줌
즉 신사임당은 큰 부자였음
신사임당 막내아들인 율곡 이이도
부모 재산 넉넉하게 물려받은 여유있는 부자였음
댓글목록
옛날 양반층은 거의 다 땅부자였지
조선 중기까지 유산 상속때 아들과 딸 차별이 없었고
장남 차남 삼남 차별없이 유산 똑같이 나눠줬다함
시집간 딸에게도 재산 물려 주고
며느리도 친정서 재산 받아오고
조선 중기이후 두번의 큰 전쟁과
몇백년전 지구가 간빙기 지나면서
기후 악화로 흉년이 지속되서
주로 농업 기반인 국가 경제 폭망선 타면서 부터
농토가 더 황패화되고 나니
쪼개서 나눠줄게 없던 조선 후기부터
주로 아들들에게만 재산(땅)을 물려 주기 시작했고
특히 장남에게 땅을 몰아 주기 시작함
장남인 놀부가 땅과 집을 다 물려받았으니
차남인 흥부는 가난하게 살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써 놓은게 바로 "흥부전"
그런게 그당시 시대 정신이고 그당시 사회 분위기
그걸 현재의 잣대로 평가 하는건 어리석은 사고방식
자네 부모님이 건물 물려주면 안받을껴 ?
받더라도 주변 임대료의 백 분지 1 적은 임대료 받는
자영업자들에게 노예해방 비슷한 임대료만 받을거냐고 자넨 ?
퇴계 이황도 두번의 결혼을 통해 엄청난 부자가 되었어
첫결혼 두번째 결혼때마다 아내들이
기름진 옥토 농지를 많이 가지고 시집을 왔거든
근데 생각해봐 조선시대 땅부자들은 많았어도
학문과 예술에 일가를 이룬 땅부자들은 흔치 않아
퇴계도 율곡도 신사임당도 허난설헌도
먼지처럼 많은 흔하디 흔한 땅부자가 아니고
부자면서 동시에 훈륭한 사람들 맞다고봐
공평치 않던 신분제 사회인 조선시대에
그시대 사람답게 살아간걸 탓하는건 넌센스
많은게 개선된듯 해도 현시대도 역시 공평치 못한 세상인건 같어
빈부여부 권력 유무 떠나서 인간들 99퍼센트가
지독한 탐욕자라서 공평한 인간세상은 영원히 불가능
백여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철학자나 소설가들도 대부분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시간이 많은 귀족들였어
유럽은 커다란 영토 안에서 영주네 한 집안만 귀족이고
영주가 부리는 기사들이 평민이고
마을 전체 주민들 모두 다 농노 신분였어
농노면 결혼식 전날에 신부가 초야도 영주랑 먼저 치뤄야 결혼할수 있었고
조선 후기에 가면서 소규모 자영농이 점차 줄고
대부호에게 땅 빌려서 농사짖는 소작농 늘면서
외거 노비 신세랑 비슷해진거지
조선초와 중기까지 실제 노비는 많지 않았어
신사임당은 예술가로서 아내로서 어미로서 딸로서
치열하게 멋지게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야
물려받은 땅이 넓으면 일꾼인 노비도 많아야만
넓은 땅을 경작하고 거기서 나온 농작물로
노비 포함 여러 식솔들 먹여 살리지
조선시대판 기업경영? 가업경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는거야
그시댄 인력 노동력 절대적인 비효율적인 세상였잖어
현재의 가치관으론 현재만 바라 보면 되고
현재의 가치관으로 사회 체제가 완전히 달랐던
과거 조선사회와 조선시대 조상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과오를 범하진 말자
그나마 조선은 유렵 중국 일본보단
그나마 조금 덜 비인간적인 사회였으니까
그때의 물려받은 재산중에
노비가 수백명을 분배했다는게
망할수밖에 없는 조선이였음
전쟁이 나도
노비는 군역이 없었으니
전쟁이 나건 말건 이였고
어느나라나 그때는
노예들이 있었다고는 하나
조선처럼 40%정도인 경우는 없었다고...
그런나라의
맹자왈 공자왈이
지금 시점에서 보면
어이없다는거
그런거 개선할 생각이 없었다는거
그런점에서는
신사임당이 왜 지폐인물인지도
의문이야
그런게 그당시 시대 정신이고 그당시 사회 분위기
그걸 현재의 잣대로 평가 하는건 어리석은 사고방식
자네 부모님이 건물 물려주면 안받을껴 ?
받더라도 주변 임대료의 백 분지 1 적은 임대료 받는
자영업자들에게 노예해방 비슷한 임대료만 받을거냐고 자넨 ?
퇴계 이황도 두번의 결혼을 통해 엄청난 부자가 되었어
첫결혼 두번째 결혼때마다 아내들이
기름진 옥토 농지를 많이 가지고 시집을 왔거든
근데 생각해봐 조선시대 땅부자들은 많았어도
학문과 예술에 일가를 이룬 땅부자들은 흔치 않아
퇴계도 율곡도 신사임당도 허난설헌도
먼지처럼 많은 흔하디 흔한 땅부자가 아니고
부자면서 동시에 훈륭한 사람들 맞다고봐
공평치 않던 신분제 사회인 조선시대에
그시대 사람답게 살아간걸 탓하는건 넌센스
많은게 개선된듯 해도 현시대도 역시 공평치 못한 세상인건 같어
빈부여부 권력 유무 떠나서 인간들 99퍼센트가
지독한 탐욕자라서 공평한 인간세상은 영원히 불가능
백여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철학자나 소설가들도 대부분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시간이 많은 귀족들였어
유럽은 커다란 영토 안에서 영주네 한 집안만 귀족이고
영주가 부리는 기사들이 평민이고
마을 전체 주민들 모두 다 농노 신분였어
농노면 결혼식 전날에 신부가 초야도 영주랑 먼저 치뤄야 결혼할수 있었고
조선 후기에 가면서 소규모 자영농이 점차 줄고
대부호에게 땅 빌려서 농사짖는 소작농 늘면서
외거 노비 신세랑 비슷해진거지
조선초와 중기까지 실제 노비는 많지 않았어
신사임당은 예술가로서 아내로서 어미로서 딸로서
치열하게 멋지게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야
물려받은 땅이 넓으면 일꾼인 노비도 많아야만
넓은 땅을 경작하고 거기서 나온 농작물로
노비 포함 여러 식솔들 먹여 살리지
조선시대판 기업경영? 가업경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는거야
그시댄 인력 노동력 절대적인 비효율적인 세상였잖어
현재의 가치관으론 현재만 바라 보면 되고
현재의 가치관으로 사회 체제가 완전히 달랐던
과거 조선사회와 조선시대 조상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과오를 범하진 말자
그나마 조선은 유렵 중국 일본보단
그나마 조금 덜 비인간적인 사회였으니까
옛날 양반층은 거의 다 땅부자였지
조선 중기까지 유산 상속때 아들과 딸 차별이 없었고
장남 차남 삼남 차별없이 유산 똑같이 나눠줬다함
시집간 딸에게도 재산 물려 주고
며느리도 친정서 재산 받아오고
조선 중기이후 두번의 큰 전쟁과
몇백년전 지구가 간빙기 지나면서
기후 악화로 흉년이 지속되서
주로 농업 기반인 국가 경제 폭망선 타면서 부터
농토가 더 황패화되고 나니
쪼개서 나눠줄게 없던 조선 후기부터
주로 아들들에게만 재산(땅)을 물려 주기 시작했고
특히 장남에게 땅을 몰아 주기 시작함
장남인 놀부가 땅과 집을 다 물려받았으니
차남인 흥부는 가난하게 살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써 놓은게 바로 "흥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