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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평양성은 북한 평양아닌 요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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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즈넷내사랑 댓글 0건 조회 1,284회 작성일 19-03-13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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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동경으로 삼았던 요양은 장수태왕이 고구려 평양성으로 삼은 지역이다. 기존 사학계에서는 아직도 북한의 평양성으로 천도한 고구려왕을 장수태왕으로 암기하듯 인식하고 있는데 조속히 바꾸어 줘야 하겠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장수왕기 15년조]에 의하면 고구려는 장수왕 15년(A.D 427년)에 수도를 평양 동황성(집안의 국내성)에서 요양 방면의 평양성으로 옮겼다. 기록내용은 "장수왕(長壽王) 15년(A.D 427년) 수도를 평양(平壤)으로 옮겼다." 十五年移都平壤」三國史記 高句麗本紀 .



요나라 기록인 [요사]에서 "북위 태무제(A.D 423-452년)의 사자가 (고구려왕 장수태왕이) 기거하는 평양성에 왔는데, 이 곳은 요의 동경(요양)이다. 당 고종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이곳에 안동도호부를 두었다." 元魏太武遣使至其所居平壤城遼東京本此 唐高宗平高麗 於此置安東都護府」遼史地理志 卷三十八 志第八 地理志二 東京道... 고구려 평양성은 장안성이라고도 한다...진나라 의희(A.D 405~418년) 후 장수왕은 (요양의) 평양성에 기거하였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할 때 평양성을 점령하였다. 고구려는 (수도를) 동쪽으로 옮겼는데, 압록수(요하) 동남 1000여리에 있는 평양성(국내성)은 전에 (장수왕이 기거하던 요양의) 평양성이 아니다. 本高句驪平壤城 亦曰長安城 漢滅朝鮮 置樂浪玄?郡 此樂浪地也晉 義熙 後 其王高璉始居平壤城 唐征高麗 拔平壤 其國東徙 在鴨綠水之東南千餘里 非平壤之舊」 元史地里志 東寧路]
 


북위시절의 고구려왕은 장수태왕이다.



[구당서]에도 "고구려국의 도읍지는 평양성(平壤城)이며, 평양성(장안성)은 漢나라의 옛 땅인 낙랑군(樂浪郡)이다..거리는 경사(京師:서안)로부터 5천리이다"고 기록하고 있다.장수태왕 14년에 천도한 평양성은 현재의 북한평양이 아니라 요양이다. 장수태왕은 광개토태왕 때 백제로부터 빼앗은 요서지방(遼西地方)을 지키기 위하여 요양으로 천도하기 2년 전인 A.D 425년에 북위(北魏)와 동맹을 맺었고, 북위와 전쟁 가능성이 없어지자, 수도를 집안 국내성에서 요양으로 옮겼다. 이 요양의 평양성은  고구려의 최후와 함께 했다.
 


부여와 고추모의 고구려



[환단고기][삼국사기],지나국[사서]기록들에 따르면 동부여에서 탈출하여 고두막의 골본부여(북부여)에 망명한 해(고)주몽은 고두막의 아들 고무서에게 아들이 없어 고무서 둘째 딸 소서노와 혼인하고 부여 단제에 올랐다.



부여단제에 즉위한 고추모에 반대하며 부여의 정통성을 두고 만주지역에서 패권을 다투던 반고구려세력이 바로 고두막의 후예라 자처하는 구태세력으로 한반도 황해도 지역으로 이주하여 한강지역의 온조-십제를 통합하고 백제를 개국한 주역이다. 한반도 황해도지역에서 이주해 오기 전 만주지역에서의 백제와 고구려의 전쟁기록은 구태세력과 고구려와의 전쟁상황을 기록한 내용이다. 


그러나, 북부여는 고국원태왕 때 완전히 복속당하여 지방장관을 파견되었으며, 동부여는 광개토태왕 때 완전히 정벌함으로써 고구려는 당당한 부여계승국이 되었고, 한반도로 이주하여 아시아바다를 지배한 백제는 남부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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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모세력이 골본부여에서 이주하여 처음 터를 잡은 고구려 도읍지-혼강 위의 골본성(오녀산성)

* 지나국에서는 골본(홀본)을 고구려를 비하하는 의미에서 병사'졸'을 사용하여 졸본성으로 표현하고 있고 우리가 그대로 졸본성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광개토태왕비문에서 홀(골)본으로 기록하고 있는 만큼 우리 스스로 고구려를 비하하는 '졸본'은 사용하지 말아야 겠다. 또한 한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고 해모수의 북부여를 접수하여 개국한 고두막의 골본부여 역시 '졸본부여'가 아니라 '골본부여'다. 고추모세력이 동부여세력에게 쫓겨서 이주해 온 지역도'졸본천'이 아니라 '골본천'이다. / 윤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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