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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를 제압하고 중원을 흔들었던 서(徐)국은 고조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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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즈넷내사랑 댓글 0건 조회 1,167회 작성일 19-03-3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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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라 침략을

 

 

격퇴한 후에

 

 

중원을 차지하고

 

  

 

주나라를 제압한


 

서국은 서씨가 세운


 

단제한국의 제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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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씨족의 고향인 영고탑은 청나라의 발상지로 대진국 발해 시대 당시 상경 용천부 지역


[환단고기]23세 아홀 단제 때 영고씨(盈古氏)를 서국(徐國)에 봉하였다...한국의 서씨는 서국에서 유래되며,단군한국의 임금들이 우리 해민족의 개국시조이신 한인.한웅.치우.한검 임금들께 제사를 지내는 영고탑이 위치한 영고씨가 은나라 침략을 물리친 후에 서국의 왕으로 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단군한국의 임금들의 한인.한웅.치우.한검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던 영고탑(寧古塔)은 청나라의 발상지로 현재 중국 헤이룽장성(黒龍江省) 무단장시 닝안(寧安)에 위치하였다.영고탑은 대진국 발해 시대에 상경 용천부가 설치되어 있었던 지역으로, 청대에서 1930년대 초까지 만주 동부의 무단장(牡丹江) 중류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영고탑은 건주여진의 5부족 중 탈알령(脱斡怜) 부족의 올적합(兀狄哈)이 근거하던 지역이었다. 청나라 초기에는 헤이룽장성에 영고탑앙방장경(寧古塔昻邦章京)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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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은나라가 침략하자, 은나라 격퇴에 참전하여 서국왕에 봉해진 영고씨는 서언왕 시기에 중원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 영고씨는 한-만주 신한에 조상의 뿌리를 둔 단군족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황하상류지역은 동남아에서 북상한 하족과 만주에서 서진한 한국배달족인 화족이 결합해서 살았던 지역으로 오늘날 중국의 시원지역이다. 그래서 중국을 화하족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화하족의 우두머리가 오늘날 중국인들이 개국시조로 삼는 배달국 사람 공손헌원이다.

 

공손헌원은 백두산 지역에 위치한 신시배달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하나의 중국을 세우고자 배달국에 도전하자, 결국 배닭국 자오지 천왕은 백두산 지역에서 고리족의 본거지였던 요서지역으로 배달국의 신시를 천도하였다. 그래서 사마천이 사기에서 치우천왕을 코리아의 천자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요서지역에 살았던 고구려의 선조들의 왕이였다는 기록이 되는 것이다. 치우천왕 이후 단군한국이 배달국이 개국되었던 만주에 세워지기까지 배달국의 역사는 중국대륙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공손헌원은 10년간 전쟁을 벌었으나,결국  치우천왕이라는 배달국 자오지 천왕에게 패하여 신하가 되었으며 화하족의 고향인 황하상류지역에서 죽었다.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던 주나라도 처음에는 황하 상류에서 일어난 조그마한 나라에 불과했다. 주날 주변에는 온통 단군민족으로 가득차 있었다.그래서 주나라 중심의 천하관으로 황하 동쪽지역의 우리 단군족을 일컬어 주나라 시각으로는 동쪽의 오랑캐라는 의미로 동이족(東夷族)이라 칭했다. 그런데, 주나라가 비하매도한 용어인 동이족이라는 호칭을 한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신적으로 아직도 소중화사대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 해민족사에서 대영웅으로 우리는 화하족의 우두머리 공손헌원과 싸운 치우천왕을 든다. 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대영웅을 모르고 있었다. 이 분은 고구려 유민인 이정기 장군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진 인물이다. 그 인물은 바로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되는 서徐)국의 서언왕(徐偃王)이다.

 

단군조선 중엽 제23세 아홀 단군임금 때 은나라의 다시 침략을 당하자, 은나라을 즉각 격퇴시키고, 은의 회대(산동지역)지방을 빼앗은 후 그 곳에 조선인을 이주시켜 은나라를 포위하게 한다. 이 때 세운 나라가 바로 제후국가들이 서(徐)국과 엄(奄)국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보면 회대 지역에 제후국이 표시되지 않은데 그 이유는 바로 이 지역이 서언왕의 나라가 호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나라의 서언왕(徐偃王)은 군대를 일으켜 지나 36개국의 조공을 받는 서제국(大徐帝國)을 건설한 민족의 영웅이었다. 『후한서』 동이전 서문을 보면 서언왕과 서이족에 대해 자세히 쓰여있다.

 

 "(주나라 3대) 강왕(康王) 때 숙신(조선)이 다시 왔고, 서이가 왕호(王號)를 일컫고 구이(九夷구려:고구려의 전신)를 이끌어 주나라를 쳤다. 이 때 서쪽으로 그 세력이 성한 것을 두려워하여 동북지방의 제후들을 나누어 주고 서언왕을 시켜 이들을 통치하게 하였다."

 

서국의 뿌리는 앞에서 말한대로 단군조선이었다. [환단고기]기록에 따르면 서기전 1263년 색불루 단군임금의 아드님이신 23세 아홀 단군임금이 중국 동부 해안지역을 평정하고 영고씨(寧古氏)를 서(徐)땅에 임명했는데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중국 고대 문헌인 박물지(博物志)에는 서언왕의 출생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고대 우리민족의 출생신화인 난생신화 계통을 잇고 있다. 중국 학자들이 밝힌 바와 같이 난생설화는 단군족 고유의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군(徐君서나라 왕)의 궁인(宮人)이 알을 낳았는데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물가에 갖다 버렸다. 어느 사람이 이것을 주워다가 따뜻하게 싸주었더니 이름을 언(偃)이라 했다. 궁인이 알에서 아이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다시 데려다가 대를 잇게 하여 서군을 삼았다. 그는 신이한 사람이었다. 무원현 동쪽 십리에 서산(徐山)의 돌집으로 된 사당이 있다. 서언왕은 진(陳), 채(蔡)의 사이를 드나 들면서 주궁(朱弓)과 주시(朱矢)를 얻었다. 이것은 하늘의 상서로움을 얻었다 하여 언왕이라 하였다."

 

이 기록은 우리 해민족 고유의 설화유형인 난생설화이며 부여의 동명왕(논형에 기록된 난생설화의 주인공)과 고구려 시조 고추모의 탄생설화와도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원을 흔들었던 서(徐)국이 고조선계 또는 고구려계였다는 결정적인 증거아닐 수 없다.

 

중국의 주나라는 이 서국(徐國)을 서이(徐夷)라 비하하여 불렀다. 서언왕의 나라인데, 기원전 1236년부터 기원전 512년까지 존속한 나라였다. 중국대륙에서 천제지자가 되는 서언왕이 단군족의 맹주가 되었고 이 때 주나라는 스스로 천자국이라고 칭하기에는 부끄러운 존재에 불과하였다.

 

[환단고기]에 보면 23대 아홀 단군의 기록에 등장한다. "을유년 기원전 1196년 (또는1236)년 남후 검달(금달,今達)이 청구군(靑邱君)과 구려군(句麗君)과 주개(周愷)라는 곳에서 모여서 몽고리(蒙古里)의 군사와 함께 은나라를 정벌하였고 깊숙히 들어가 회대(淮岱)의 땅을 평정하였다. 제후들이 회대의 땅을 평정, 포고씨(蒲古氏)를 엄국(奄國), 영고씨(盈古氏)를 서국(徐國), 방고씨(邦古氏)를 회(淮)땅에 각각 봉하였다. 은나라 쇠퇴하였다."

 

서국(徐國)은 기원전 1236년에 영고씨(寧古氏)를 봉한 나라로 기원전1236년부터 기원전 668년 제나라에 합병될 때까지 570년간 존속하였다. 기원전 680년경 초나라 문왕에게 한 때 수도를 점령당하여 서산(徐山)으로 수많은 백성들과 피난하였다.

 

우리 민족사에서 기억 속에 잊혀진 인물인 서국의 서언왕(徐偃王)은 중원에 진출하여 단군조선의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이다. 주나라 목왕이 서국이 두려워 서언왕을 중원지역의 맹주로 인정한 것이다. /윤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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