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적당히 감성적인 수준이 아니라, 신발 안까지 침수되는 수준으로 온다.
나는 우산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있었다.
어제 버스에 두고 내렸다. 내 기억력은 늘 그렇게 하루짜리다.
편의점 처마 밑에 서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준비된 사람처럼 우산을 쓰고 지나간다.
나만 준비 안 된 인생처럼 서 있다.
그때였다.
“같이 쓰실래요?”
고개를 들었더니, 낯선 사람이 우산을 살짝 기울이고 있었다.
투명 우산이었다.
요즘 흔한 그 비닐 우산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영화 소품 같았다.
“아… 괜찮습니다.”
나는 괜히 멋있어 보이려고 거절했다.
사실 속으로는 이미 절반쯤 들어가 있었다.
“이대로 서 계시면 감기 걸리세요.”
결국 나는 우산 아래로 들어갔다.
둘이 쓰기엔 애매하게 작은 우산이라, 어깨가 자꾸 부딪혔다.
그때마다 괜히 더 어색해져서, 비보다 침묵이 더 불편했다.
“어디까지 가세요?”
“저… 그냥 쭉 갑니다.”
“저도요.”
둘 다 목적지가 없는 사람처럼 대답했다.
걸어가면서 별 얘기를 다 했다.
날씨 얘기, 교통 얘기,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라면 얘기까지.
비 오는 날엔 라면이라는 결론까지 도달했다.
어느 순간 비가 좀 잦아들었다.
우산이 필요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굳이 같이 쓰지 않아도 되는 정도.
“여기서 저는 이쪽으로 가야 해서요.”
그 사람은 자연스럽게 우산을 넘겨주려 했다.
“아니에요, 제가 빌렸으니까…”
“괜찮아요. 어차피 집에 우산 많아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사람은 빗속으로 그냥 걸어갔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한동안 서 있었다.
손에 들린 투명 우산을 보면서.
집에 와서 말리려고 펼쳤는데,
손잡이 부분에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편의점 3,000원”
…
그날 깨달았다.
그건 운명이 아니라,
그 사람이 즉석에서 산 우산이었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 우산을
지금까지도 쓰고 있다.
비가 올 때마다 생각난다.
“그때 라면 얘기까지 했는데…
이름은 왜 안 물어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