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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무와 사마중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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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무와 사마중달

작성일 26-05-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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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병두작가 조회 4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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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각(虎角)의 밤]

 

칠흑 같은 어둠이 지배하는 낙양의 외곽. 몰아치는 장대비는 대지를 찢어발길 듯 거칠었고, 웅장하게 서 있는 황량한 객잔 '고월루(孤月樓)'는 폭풍우 속에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객잔 내부에는 기이할 정도의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단 하나의 등불만이 바람에 흔들리며 벽면에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낼 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공간. 그 침묵을 깨고 객잔의 두꺼운 목문이 거칠게 열렸다.

매서운 밤바람과 함께 한 사내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사내의 어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기이할 정도로 눈부신 백발(白髮)이었다. 비에 젖은 백발은 등불 빛을 받아 마치 은사(銀絲)처럼 차갑게 빛났다. 그가 바로 강호에서 천하제일의 쾌검(快劍)이라 불리며, 의기(義氣)를 위해 평생을 살아온 고독한 검객, 백발무였다.

그는 젖은 삿갓을 벗어 던지며 오직 한 곳만을 응시했다. 객잔 가장 깊숙한 곳, 화려한 촉대 불빛 아래에서 홀로 찻잔을 만지작거리는 중년의 사내. 삼국시대 사마의의 후손이자, 천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굴린다는 당대 최고의 책략가이자 심검(心劍)의 고수, 사마중달이었다. 백발무가 무림맹의 은밀한 밀명을 받고 조정을 뒤흔드는 거악(巨惡)인 그를 단죄하기 위해 이곳까지 추적해 온 것이었다. 두 고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류가 객잔 내부의 공기를 차갑게 얼려버렸다.

 

"예상보다 사반시(1시간)나 늦었군, 백발무. 천하의 쾌검도 폭풍우 앞에서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모양이지?"

사마중달이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내공이 실려 있어, 객잔의 단단한 흙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네놈의 죄업을 청산하기 위해서라면, 이 저승 같은 폭풍우 속이라도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다. 사마중달, 오늘 밤 네놈의 간사한 계책도 이곳에서 막을 내릴 것이다."

백발무의 목소리는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갑고 단호했다. 그의 오른손은 이미 허리춤에 매달린 낡은 검의 자루를 부드럽게 쥐고 있었다.

그러나 사마중달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잔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천하의 지략가인 그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백발무의 움직임을 몰랐을 리 없었다. 오히려 이곳 고월루는 사마중달이 직접 고른 백발무의 무덤이었다.

"내 평생 하늘의 뜻을 읽고 인간의 마음을 계산해 왔거늘, 네놈이 내 목을 치러 올 것을 몰랐겠느냐? 무지한 검객이여, 주위를 둘러보아라."

사마중달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세 번 튕겼다. 그 신호와 함께 객잔의 어두운 천장과 바닥, 벽면의 그림자 속에서 소리 없이 수십 명의 흑의자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마가문이 자랑하는 정예 무사들이 펼치는 철통같은 포위망, 이른바 '칠성살진(七星殺陣)'이 백발무를 옥죄어 오기 시작했다.

 

"네놈의 검이 아무리 눈보다 빠르다 한들, 이 진법의 변화무쌍함과 수십 자루의 병기를 동시에 막아낼 수는 없다. 죽여라!"

사마중달의 냉혹한 명과 함께, 자객들의 신형이 일제히 움직였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검기와 도광(刀光)이 백발무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발길 듯 쇄도했다. 진법의 연쇄적인 압박은 숨을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스스스스콰르릉!

그 순간, 거대한 천둥소리와 함께 백발무의 백발이 허공으로 사납게 휘날렸다. 그의 오른손이 움직인 것은 인지할 수조차 없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백발무의 검은 칼집에서 완전히 뽑히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으나, 객잔의 어둠을 가르고 일곱 줄기의 찬란한 은백색 검광이 번쩍였다. 그것은 단순한 속도를 넘어선, 공간을 베어내는 듯한 쾌검의 극의였다.

"끄악!" "!"

짧은 단명과 함께 사방으로 붉은 선혈이 비산했다. 목을 겨누던 자객들의 병기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일곱 명의 핵심 무사들이 전신을 결박당한 듯 굳어지더니 이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단 한 초() 만에 사마가문이 자랑하던 무적의 살진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다. 사마중달의 여유롭던 미간이 처음으로 보기 흉하게 찌푸려졌다.

 

"과연천하제일쾌검이라는 명성이 허명이 아니었군.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속도로다."

사마중달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주위로 자객들의 핏물이 흘러내렸지만, 그의 안색은 이내 차가운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는 허리춤에서 자신의 진정한 무기이자 가문의 가보인 '음양반(陰陽盤)'을 꺼내 들었다. 금속으로 정교하게 짜인 팔괘 형상의 무기가 그의 손에서 기이한 공명음을 내기 시작했다. 사마중달이 그곳에 자신의 방대한 심법 내공을 주입하자, 객잔 내부의 대기가 뒤틀리며 마치 사방의 중력이 몇 배로 무거워진 듯한 기괴한 압박감이 백발무의 어깨를 짓눌렀다. 사마중달의 무서움은 단순한 무력이 아닌, 상대의 심리를 무너뜨리고 주변의 지형지물을 자신의 수하로 만드는 지략과 심검의 결합에 있었다.

"하지만 백발무야, 진짜 살진은 이제부터다. 이 고월루 자체가 너를 가두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함정이라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단 말이냐?"

사마중달의 음침한 웃음소리가 커지며, 객잔의 거대한 기둥들이 쩌적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백발무는 검을 거꾸로 쥐며 자세를 한층 더 낮췄다.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 속에서, 두 절대고수의 진정한 생사결이 마침내 그 막을 올리고 있었다.

 

 

[2: 혈로(血路)의 끝]


! 폭발적인 굉음과 함께 고월루의 지붕이 통째로 날아갔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거친 빗줄기가 두 고수의 얼굴을 때렸지만, 그들의 눈은 서로를 놓치지 않았다. 백발무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사마중달의 목을 향해 직선의 검로를 그었다. 빗방울마저 두 동강이 나는 가공할 만한 속도였다.

그러나 사마중달은 당대 최고의 지략가답게 한 걸음 물러서며 백발무의 동선을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왼쪽 삼 (), 그리고 위로 두 분!"

사마중달이 외치며 손에 쥔 음양반을 가볍게 회전시키자, 보이지 않는 기벽이 형성되며 백발무의 검 끝을 정확하게 튕겨냈다. 콰아앙! 기운과 기운이 충돌하며 발생한 후폭풍이 주변의 모든 가구를 가루로 만들었다.

"네 검은 너무 정직하다, 백발무! 아무리 빠를지언정 십 수 앞의 미래를 내다보는 내 혜안(慧眼)을 벗어날 수는 없다!"

사마중달의 호통과 함께 음양반에서 수십 발의 무형기공(無形氣功)이 탄환처럼 뿜어져 나왔다. 백발무는 급히 신형을 비틀어 피하려 했으나, 사마중달의 치밀하게 계산된 연속 공격에 결국 어깨와 허벅지를 스치고 말았다. 백발무의 순백의 의복이 붉은 생혈로 무참히 물들기 시작했다.

 

사마중달의 안광이 승리감으로 번뜩였다. 그는 단순히 무공으로만 싸우는 자가 아니었다. 이미 이 객잔의 바닥 아래에는 수만 개의 독침과 강철 송곳이 장치된 기관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백발무가 상처를 입고 중심을 잃은 바로 그 자리가 기관의 핵심 축이었다.

"지금이다! 지옥으로 떨어져라!"

사마중달이 바닥의 특정 타일을 밟자, 거대한 소음과 함께 백발무가 딛고 있던 단단한 흙바닥이 순식간에 아래로 꺼져 내렸다. 밑바닥에는 시커먼 독기가 서린 수천 개의 강철 침들이 박혀 있었다. 허공에 신형이 떠올라 디딤돌을 잃은 무인만큼 무력한 존재는 없다. 피할 곳도, 도망칠 곳도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사마중달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전 내력을 음양반에 쏟아부어 백발무의 심장을 향해 일격 필살의 심검을 날렸다. 웅장한 기운의 용이 백발무를 집어삼킬 듯 포효하며 돌진했다. 강호의 위대한 신화가 이대로 한낱 지략가의 덫에 걸려 종말을 고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 선 백발무의 눈빛에는 두려움이나 절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동자는 거울처럼 투명하고 맑게 빛났다. 그는 허공에서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자신의 왼손으로 휘날리는 백발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전신의 혈도를 역류시키며 온몸의 남은 내력과 생명력을 오직 검 한 자루에 남김없이 집중시켰다.

"사마중달너는 하늘의 뜻을 읽고 인간의 육체를 계산했으나, 단 하나불의에 항거하는 인간의 '의지'만큼은 계산하지 못했다."

백발무의 최종 오의(奧義) 백화요란(白華繚亂).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백발무의 손에 쥐여 있던 검이 허공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그것은 단순히 빠른 것을 넘어, 검이 빛의 속도와 동화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상태'에 이른 검도(劍道)의 절대 경지였다. 사마중달이 승리를 확신하며 날린 거대한 심검의 기운이, 백발무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은빛 폭풍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 났다. 공간을 가르는 은빛 선들이 사마중달이 쳐둔 모든 기관과 덫을 깨부수며 역으로 그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사마중달의 두 눈이 이보다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와 무림 최고의 계산력으로도, 생명력을 불태워 한계를 초월한 백발무의 무형검은 도저히 계산의 영역에 넣을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은빛 검망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서각.

폭풍우가 치는 밤하늘 아래, 아주 작고 나지막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쏟아지던 빗줄기가 잠시 멈춘 듯한 기묘한 착각이 드는 적막 속에서, 두 사내는 서로를 등진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섰다.

"내가 어찌하여이 계산이 틀렸단 말인가……."

사마중달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순간, 그의 목을 감싸고 있던 비단 옷깃 위로 가느다란 붉은 선이 그어지더니, 이내 감당할 수 없는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패배를 믿을 수 없다는 듯 허공을 움켜쥐려 했으나, 이내 무릎을 꿇으며 싸늘하게 식어가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천하를 오만하게 굽어보던 지략가의 허망한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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