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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간의 속마음

장미빛 사랑

작성일 26-06-01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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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연희작가 조회 6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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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빛 사랑

 

올해 쉰둘이 된 마트 점장 진남의 일과는 아침 7,

매장 앞 매대를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평생 로맨스라는 단어와는 담담하게 거리를 두고 살아온 그였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식물은 마트 땡처리 코너의 대파 묶음이 전부였다.

그런 그의 앞에 그녀, ‘미숙(50)’이 나타난 건 한 달 전이었다.

미숙은 마트 맞은편에 장미꽃 피는 날이라는 꽃집을 열었다.

이름처럼 화사하고, 가끔은 가시 돋친 말도 서슴지 않는 당찬 여자였다.

"점장님, 마트 앞에 카트를 그렇게 늘어놓으시면

우리 집 장미들이 햇빛을 못 받잖아요!"

그게 첫 마디였다. 진남은 투덜거리며 카트를 옮겼지만,

이상하게 그날 이후부터 코끝에서 장미 향이 떠나지 않았다.

 

 

중년의 썸은 청춘의 그것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동시에 훨씬 서글프다.

두 사람은 퇴근 후 마트 뒤편 포장마차에서 우동을 먹으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하루는 미숙이 꽃 도매시장 영수증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고, 글씨가 왜 이렇게 작아. 안 보이네."

진남은 말없이 주머니에서 자신의 돋보기안경을 꺼내 미숙에게 건넸다.

도수가 딱 맞았다. 미숙이 환하게 웃었다.

", 세상이 다 환하네! 점장님, 우리 눈 나빠지는 속도도 커플이네요?"

진남의 심장이 오랜만에 RPM을 높여 뛰기 시작했다.

그날 밤, 진남은 스마트폰에 미숙의 이름을 등록했다.

 

 

어느 날 저녁, 꽃집 문을 닫으려던 미숙이 비명을 질렀다.

대형 장미 다발을 정리하다가 엄지손가락에 굵은 가시가 깊숙이 박힌 것이다.

마침 퇴근하던 진남이 그 모습을 보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어디 봐요! 가만있어 봐요."

진남은 마트에서 기어코 구급상자를 들고 와 미숙의 손을 잡았다.

노안 때문에 초점이 잘 맞지 않아 고개를 뒤로 잔뜩 젖힌 채였지만,

그의 손길은 두부 장수가 두부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핀셋으로 겨우 가시를 빼내자, 미숙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말했다.

"아프다나이 먹어도 아픈 건 똑같네요."

"그러게 왜 조심성 없이앞으로 가시 있는 건 내가 다 만질 테니까 부르기나 해요."

진남의 툭 던진 한마디에 꽃집 안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미숙이 붉어진 얼굴로 진남의 손에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쥐여주었다.

"이건 치료비예요.“

 

 

그해 가을, 마트 앞 매대에는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1+1 기획 상품 옆에 생뚱맞게 예쁜 장미 화분들이 진열되기 시작한 것이다.

안내판에는 진남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특별 기획]

남편에게 주면 사랑받고, 아내에게 주면 밥상이 달라지는 마법의 장미: 5,000

(A/S 및 분갈이 문의는 맞은편 꽃집 예쁜 사장님에게)

동네 주부들이 "마트 점장이 미쳤나 봐"라며 낄낄댔지만,

장미는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퇴근길, 미숙이 마트 앞으로 찾아와 진남에게 팔짱을 쓱 끼었다.

"진남 씨, 오늘 매출 좋은데 오겹살에 소주 한잔 어때요?"

진남은 짐짓 무뚝뚝한 표정으로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콜레스테롤 수치 높아서 고기는 좀 그런데미숙 씨가 가자면 가야지."

붉은 장미보다 더 붉게 물든 저녁 노을 속으로, 배 나온 중년 남녀가 발맞추어 걸어갔다.

서로의 가시를 품어줄 수 있는, 가장 어른스럽고도 철없는 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세 달째 되던 날, 미숙은 꽃집 문을 닫고

진남의 마트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장미꽃이 아니라, 시퍼런 종합건강검진 예약서였다.

"진남 씨, 내일모레 나랑 같이 병원 가요.

내가 커플권으로 끊어왔으니까 핑계 댈 생각 마요."

진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장 내시경의 그 무시무시한 물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온갖 수치(지방간, 고지혈증, 탈모 진행 상황 등)

미숙에게 들킬까 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검사 전날 밤, 두 사람은 영상 통화를 했다.

2리터짜리 약을 마시며 괴로워하는 진남을 보며 미숙이 깔깔 웃었다.

"진남 씨, 힘내요! 그거 다 비워내야 우리 내일 깨끗한 모습으로 만나요."

"미숙 씨나 지금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기분이야.

장미고 뭐고 가시만 남은 것 같소……."



다음 날 아침, 병원 대기실.

두 사람은 환자복을 나란히 입고 털 실내화를 신은 채 만났다.

화장기 없는 미숙의 얼굴은 수척했지만, 진남의 눈에는 여전히 고왔다.

드디어 대장 내시경을 마치고 수면 마취에서 깨어나는 회복실.

먼저 깬 미숙이 옆 침대의 진남을 바라보았다.

진남은 아직 마취가 덜 풀려 헛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으음…… 미숙 씨…… 마트 대파 세일해야 하는데……

아냐, 미숙 씨 꽃집에 물 줘야 해…… 미숙 씨가 제일 예뻐……."

미숙은 남몰래 진남의 거친 손을 꼭 잡았다.

청춘의 고백처럼 감미롭진 않았지만,

마취 가스 속에서 흘러나온 진남의 진심은 그 어떤 장미 향보다 달콤했다.

그날 오후, 두 사람은 병원 앞 죽집에서 낙지김치죽을 나눠 먹으며

서로의 검진 결과(진남은 경미한 지방간, 미숙은 가벼운 위염)를 공유했다.

"우리 오래 건강합시다. 그래야 연애도 오래 하지."

진남의 말에 미숙이 대답 대신 죽 한 숟가락을 그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겨울이 깊어가던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미숙의 꽃집은 연말 성수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진남은 퇴근하자마자 꽃집으로 달려와

듬직하게 짐을 날라주며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드디어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단둘이 남은 밤 9.

미숙이 지쳐서 의자에 주저앉자,

진남이 비장한 표정으로 꽃집 문을 걸어 잠갔다.

"어머, 진남 씨? 왜 문을 잠가요? 설마?"

미숙의 눈이 동그래졌다.

중년의 로맨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진한 고백 타임인가 싶어

미숙은 은근히 가슴이 설렜다.

진남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마트 가방에서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리고 탁자 위에 쾅! 올려놓은 것은…… 꽃다발이 아니라

마트용 휴대용 부르스타와 생삼겹살 몇 근, 그리고 쌈장이었다.

"미숙 씨, 오늘 고생 많았소. 프러포즈는 자고로

단백질이 보충되는 곳에서 해야 제맛이지!"

"?! 꽃집에서 삼겹살을 구우시겠다고요?!"

미숙이 황당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진남은 이미 능숙한 손놀림으로

불을 켜고 삼겹살을 올렸다. 치익- 소리와 함께 고기 굽는 냄새가

꽃집 안의 은은한 장미 향을 무참히 짓밟으며 퍼져나갔다.

미숙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꽃집 개업 이래 이런 화력(?) 넘치는 데이트는 처음이었다.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가자, 진남이 진지한 눈빛으로

상추 한 장을 손에 폈다. 그리고 잘 익은 삼겹살 두 점에 쌈장을 듬뿍 찍고,

마늘까지 얹은 '거대한 쌈'을 싸서 미숙의 입앞으로 내밀었다.

"미숙 씨, 나랑 살면 평생 고기 끊길 일은 없게 하겠소.

마트 최고급 한우도 다 미숙 씨 차지야.

나랑 같이 남은 인생 맛있게 구워봅시다!"

감동적인 시나리오를 예상했던 미숙은 그 거대한 쌈을 받아먹으며

결국 빵 터지고 말았다. 입안 가득 삼겹살을 우물거리며 미숙이 말했다.

"우읍진짜 대책 없는 양반이네!

내 꽃집에 고기 냄새 다 배면 진남 씨가 책임질 거예요?"

"당연하지, 내가 매일 퇴근하고 와서 인간 페브리즈가 되어 주겠소!"

두 사람은 연기가 자욱한 꽃집 안에서 소주잔 대신 종이컵에

사이다를 채워 건배했다. 화려한 촛불 대신 불타오르는 부르스타 앞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웃음 터지는 중년의 프러포즈가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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