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가까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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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연희작가 댓글 2건 조회 144회 작성일 26-05-17 20:45본문
산골 마을의 밤은 유난히 별이 많았다.
사람들은 그 별들을 보고 내일의 날씨를 점치거나 소원을 빌었지만,
마을 끝 오래된 풍차집에 사는 소년 도혁은 별을 보며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곤 했다.
도혁의 아버지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읍내 시장에서 산양유와 치즈를 팔며 살아갔다.
도혁은 학교가 끝나면 산비탈에서 양 떼를 돌보는 일을 했다.
해가 지면 양들은 풀 냄새를 묻힌 채 천천히 우리로 돌아왔고,
도혁은 그때부터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밤이 시작되면 세상은 조용해지고,
별빛은 마치 낮보다 더 또렷하게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어느 늦여름 저녁이었다.
도혁은 양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산등성이 위쪽까지 올라갔다.
바람이 억새를 스치는 소리가 바다처럼 들렸다.
그때 멀리 작은 불빛 하나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누구 있어요?”
소년이 부르자 불빛이 멈췄다.
가까이 가보니 등불을 든 소녀 하나가 서 있었다.
하얀 남방 위로 짙은 남색 스웨터를 걸친 아이였다.
소녀는 조금 놀란 얼굴로 도혁을 바라보았다.
“길을 잃었어요.”
그 말은 아주 조용했지만, 이상하게 별빛보다 더 맑게 들렸다.
소녀의 이름은 서린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와 외할머니 댁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마을이 낯설어 산길에서 방향을 잃은 모양이었다.
도혁은 말없이 앞장섰다.
산 위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별들이 은가루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서린은 걷다가 몇 번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울에서는 별이 이렇게 많지 않아.”
“여긴 전깃불이 별로 없으니까.”
“별이 가까운 곳이네.”
도혁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별이 가까운 곳.
이상한 말인데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두 사람은 바위 하나에 잠시 앉아 쉬었다.
밤공기는 서늘했고 풀벌레 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 같았다.
서린은 하늘을 가리켰다.
“저거 알아? 여름 대삼각형.”
도혁은 고개를 저었다.
“직녀성과 견우성, 그리고 데네브를 이으면 삼각형이 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엄마가 살아 계실 때 가르쳐줬어.”
서린은 말을 마치고 잠시 조용해졌다.
도혁은 괜히 손에 쥔 풀잎만 만지작거렸다.
산바람이 지나가며 소녀의 머리카락을 조금 흔들었다.
“별은 참 이상해.”
서린이 말했다.
“아주 멀리 있는데도 사람 마음을 움직이잖아.”
도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생각했다.
지금 자기 마음을 움직이는 건 별일까, 아니면 이 소녀일까 하고.
그날 이후 서린은 자주 산에 올라왔다.
둘은 함께 양을 몰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밤이면 별자리를 찾았다.
서린은 별 이름을 많이 알고 있었고 도혁은 산의 길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은 서로가 모르는 세상을 하나씩 가르쳐주었다.
어느 날 서린이 말했다.
“도혁아,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 믿어?”
도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모르겠어.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외롭진 않겠다.”
“왜?”
“밤마다 누군가 올려다봐주잖아.”
서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작게 웃었다.
“넌 이상하게 슬픈 말을 따뜻하게 하네.”
가을이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더 높아지고 별빛은 더 선명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서린이 서울로 돌아갈 날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떠나는 전날 밤이었다.
둘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갔다.
은하수가 하늘을 길처럼 가로지르고 있었다.
서린은 작은 유리병 하나를 도혁에게 건넸다.
병 안에는 하얀 종이별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건 뭐야?”
“잠 안 오는 밤마다 하나씩 꺼내 봐.”
도혁은 종이별 하나를 펼쳐보았다.
― 가장 먼저 찾은 별은 북극성
― 오늘 바람 냄새는 풀잎 같음
― 도혁은 웃을 때 눈이 먼저 웃는다
짧은 문장들이 별처럼 접혀 있었다.
도혁은 갑자기 가슴이 저려왔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기 직전 사람은 왜 이렇게 조용해지는 걸까.
서린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나중에 아주 멀리 떨어져 살아도… 같은 별은 볼 수 있겠지?”
도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별똥별 하나가 길게 흘러내렸다.
서린은 얼른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도혁은 묻지 않았다.
소원은 말하는 순간 사라진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서린은 떠났다.
버스는 먼지를 일으키며 산길 아래로 사라졌고, 도혁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에는 아직도 종이별이 담긴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렀다.
도혁은 어른이 되었고, 풍차집은 사라졌으며, 양 떼 대신 작은 천문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는 밤마다 아이들에게 별자리를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왜 사람은 어떤 계절의 냄새나 어떤 별빛을 보면 오래전 사랑을 떠올리게 되는가 하는 것.
어느 겨울 밤이었다.
천문관 관측실 문이 열리며 검정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한참 동안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오늘도 여름 대삼각형이 보여?”
도혁은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잊고 있던 별빛 하나가 다시 가슴속에 켜지는 것을 느꼈다.
댓글목록
황동만은 시나리오
'날씨를 만들어 드립니다' 를 썼어요
연희킴 작가는 시나리오
'별을 보여 드립니다'를 쓰세요ㅎ
황동만은 드라마 주인공이에요
황동만은 시나리오
'날씨를 만들어 드립니다' 를 썼어요
연희킴 작가는 시나리오
'별을 보여 드립니다'를 쓰세요ㅎ
황동만은 드라마 주인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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