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진객잔의 매화향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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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병두작가 댓글 0건 조회 15회 작성일 26-06-08 23:36본문
쿠콰콰쾅!
독고언의 도기가 객잔 내부를 처참하게 부수어 나갔다.
혁련무는 신형을 표홀하게 움직이는 '유운보(流雲步)'를 전개하며
간발의 차로 도기들을 피했다.
하지만 독고언의 도세(刀勢)는 끊이지 않고 그물망처럼 혁련무를 조여 왔다.
"쥐새끼처럼 도망만 다닐 셈이냐!"
독고언이 포효하며 마지막 절기를 펼쳤다.
그의 참마도가 수십 개의 잔상으로 갈라지며 혁련무의 전신을 덮쳤다.
혈랑환영도(血狼幻影刀). 피할 길은 없었다.
그 순간, 혁련무의 매서운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도망친 게 아니다. 기회를 본 거지."
혁련무가 마침내 왼손에 쥔 검을 움직였다.
천에 감긴 검이 기묘한 궤적을 그리며 독고언의 도영(刀影) 사이를 파고들었다.
콰직!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굉음이 아닌,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혁련무의 검집 끝이 독고언의 무수한 도영을 뚫고 정확히
그의 오른쪽 어깨 관절을 관통한 것이다.
"크아악!"
독고언이 참마도를 떨어뜨리며 뒤로 물러섰다.
어깨에서 선혈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독고언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혁련무를 바라보았다.
검을 뽑지도 않은 검집에 자신의 절기가 깨지다니.
"너…… 너는 대체……."
"지도를 원했나?"
혁련무가 품 안에서 가죽으로 된 두루마리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가져가라. 그건 이미 가짜니까.“
"뭐라구……?"
독고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묵혈련의 보물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이 지도는 무림맹의 변절자들과 서하의 무인들을 한곳에 모으기 위해 내가 판 함정이지."
혁련무의 목소리에는 깊은 원한이 서려 있었다.
"5년 전, 매화검문(梅花劍門)을 멸문시킨 자들이 누구였는지 기억하나?
서하의 혈랑대, 그리고 그들에게 정보를 넘긴 무림맹의 첩자들."
독고언의 외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네놈이…… 매화검문의 생존자였단 말이냐!"
"내 이름은 혁련무가 아니다. 매화검문 장문인의 제자, 백서진(白舒進)이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혁련무, 아니 백서진은 드디어
왼손의 검을 감싸고 있던 천을 거칠게 풀어헤쳤다.
천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은은한 매화 향과 함께 순백의 검신을 가진 명검
'낙매검(落梅劍)'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백서진이 검을 뽑아 들자,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기(劍氣)가 객잔의 비바람마저
멈추게 할 듯이 사방을 압도했다.
독고언은 전율했다. 눈앞의 사내는 쫓기는 도망자가 아니었다.
자신들을 파멸시키기 위해 지옥에서 돌아온 악귀였다.
"으아아앗! 같이 죽자!"
독고언은 왼손으로 바닥의 참마도를 가로채며 마지막 남은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전신에서 붉은 혈안(血眼)의 기운이 솟구쳤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심산이었다.
백서진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스스스슥-
객잔 내부에 붉은 매화 꽃잎이 날리는 듯한 환영이 일었다.
매화검문의 절학, '만천낙매(滿天落梅)'였다.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검의 궤적이 독고언의 혈기(血氣)를 가차 없이 찢어발겼다.
번개가 객잔을 다시 한번 번쩍 비추었다가 사라진 찰나의 순간.
스각.
독고언의 신형이 우뚝 멈춰 섰다. 그의 목에서 한 줄기 붉은 선이 그어지더니,
이내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참마도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고,
뒤이어 그의 거구도 힘없이 쓰러졌다.
객잔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숨어 있던 점소이는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백서진은 검에 묻은 피를 툭 털어내고 다시 천으로 검을 감쌌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가짜 지도를 주워 품에 넣었다.
아직 찾아내야 할 원수들이 무림맹에 남아 있었다.
그는 삿갓을 깊게 눌러쓰고 다시 객잔의 문을 열었다.
밖에는 여전히 차가운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
백서진의 흑포가 어둠 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붉은 매화 향만을 빗속에 남겨둔 채,
그의 복수의 여정은 이제 막 막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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